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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 지폐의 세계사] 지폐는 알고 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셰저칭 지음, 마음서재 펴냄

"지폐는 예술이자 시대적 기억"

돈에 새겨진 인물·건축물 통해

42개국 철학·역사 세세히 짚어

北지폐 속 주체사상탑 소개하며

"절대왕정 부활 시킨 독재" 일갈도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이 도안된 스페인 100페세타 지폐 앞면(왼쪽부터)과 고야의 초상, 고야의 작품 ‘파라솔’과 100페세타 뒷면 도안.




#스페인의 지폐 발행 역사를 살펴보면 프란시스코 고야는 주제 인물로 아주 빈번하게 등장한다. 19세기 부르봉 왕조 말기부터 20세기초 제2공화국, 심지어 프랑코 장군의 독재시대에 발행된 지폐에서도 고야의 자취를 흔히 볼 수 있다. 아마도 계급의 격차를 조화롭게 녹여낸 고야의 예술적 성취가 스페인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퍼스트은행이 발행한 1달러 지폐 앞면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초상화가 인쇄돼 있다. 콜럼버스는 국경을 초월해 세계 각국 지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필시 미국은 콜럼버스를 남의 땅을 강제로 차지한 인물로 여기는 동시에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의도와 야심을 널리 선포하는 인물로 생각하는 듯하다.

25년간 97개국을 여행하며 세계 각국의 지폐를 수집해온 대만 인문학자 셰저칭은 ‘지폐의 세계사’에서 미국·스페인·프랑스 등 42개 나라의 지폐에 깃든 역사와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위와 같은 단상을 전한다.

“지폐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예술이자 시대의 기억”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 그의 눈에 북한은 참담했던 모양이다. 다양한 경로로 수 차례에 걸쳐 북한에 다녀왔던 저자는 그 사회와 지폐를 보고 나서 “모두들 ‘선군사상’ 아래 대대적으로 개인을 숭배해온 허구의 유토피아 북한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라고 개탄했다. 그는 1992년 북한이 발행한 50원 지폐의 주체사상탑이, 100원 지폐의 김일성 초상 등을 소개하며 “북한의 김 씨 왕조는 시공을 착각해 절대왕정을 부활시킨 독재자였다”고 일갈했다.



이 책엔 아쉽게도 한국 지폐의 소개가 빠져있다. 하지만 우리 지폐에도 독재자와 얽힌 ‘흑역사’가 있다. 1958년 8월15일 한국은행이 500환권 지폐의 도안을 돌연 바꿨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다. 기존의 500환권 한복판에 새겨진 이승만 초상이 접히고 구겨져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고 얼굴 위치를 지폐 오른쪽으로 옮겨 새로 발행한 것이다. 그때 항간에는 “독재자를 욕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초상을 중앙에 넣었다”는 소문이 있었다는데 그게 헛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권력과 지폐의 불가분 관계는 중앙아프리카 부룬디의 지폐에서 극명했다. 1995년 부룬디에서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화해를 위해 힘쓴 후투족 출신 민선 대통령 은다다예의 초상화가 인쇄된 지폐가 발행됐는데 2년 후 지폐에선 초상화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전통 조각 도안이 새겨졌다. 정권이 투치족으로 넘어간 이후 취해진 조치다. 그러나 2002년 두 민족이 평화협정에 서명한 이후 새 지폐 도안에는 후투족 대통령 은다다예와 투치족 왕자 르와가소르가 나란히 올랐다. 부룬디 지폐의 역사 속에는 민족의 갈등과 전쟁, 화해와 평화에의 열망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셈이다.

한국 지폐의 역사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 책을 읽다 보면 “지폐의 도안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며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축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기까지 우리나라 지폐는 대부분에 이승만 초상이 도안으로 쓰였고, 지금은 퇴계 이황(1,000원권)·율곡 이이(5,000원권)·세종대왕(1만원권)·신사임당(5만원권) 초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지폐가 우리 시대와 역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올바로 함축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만드는 책이다. 1만6,000원
/문성진기자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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