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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빈센트 반 고흐, 간절함을 담은 언어의 힘

작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 보낸 편지

예술 향한 열정·환희 고스란히

당대엔 비록 인정받지 못했지만

세상에 맞선 불굴의 용기 느껴져





고흐의 그림과 편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그림’과 ‘글쓰기’가 마치 절반으로 딱 접어 다시 펼친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닮은꼴로 보인다. 그림의 강렬함과 열정, 누구의 눈치도 보고 싶지 않은 극단적 감성, 사랑과 예술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달려갈 것 같은 불꽃 같은 의지가 글쓰기 속에서도 드러난다. 고흐의 글쓰기가 지닌 매력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어떤 간절함에 있다. 예술을 향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편지마다 알알이 녹아 있다. 한편으로 그는 예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누군가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고독과 소외감은 빈센트를 괴롭히는 가장 무서운 적이었고, 그가 고갱의 성향에 대해 미처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간절하게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살기를 바란 것도 외로움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었던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분명 그 쓰라린 고독과 절망을 뛰어넘는 불굴의 용기와 따스함으로 가득하다.

그가 고갱으로부터 버림받고, 오랫동안 동경하고 사랑해왔던 사람들과 차차 멀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사람은 바로 동생 테오였다.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고흐는 여러 번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그래야만 우리 두 형제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설득한다. “테오야, 너는 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화가가 되려고 하지 않는 거니.” 그는 테오로부터 단지 경제적 원조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테오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살려 함께 그림을 그리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고독과 가난, 차별과 소외라는 감옥을 없애는 진정한 힘은 깊고 진실한 사랑임을 알았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마술적 힘임을, 그는 알았다. 사랑이 다시 태어나는 곳에서 인생 또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그는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믿었다. 고흐가 모네처럼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면서도 일생의 반려자를 얻을 수 있는 행운의 주인공이었다면, 그가 그토록 일찍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고흐에게는 사랑을 쟁취하는 행운,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따라 주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느낄 때마다 용감하게 돌진하여 상대 여성에게 구애를 했지만, 결국은 그의 사랑을 받아주는 여성이 없었다. 그가 잠깐씩 일시적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고흐가 폭발적인 열정을 쏟아부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흐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커다란 힘을 얻었다. ‘창녀와의 동거’라는 이유로 가족 모두가 심각한 수치심을 느꼈기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시엔과의 만남에서 고흐가 느꼈던 것도 바로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안정감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그 아늑한 느낌과 따스함이 파괴되자 고흐는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인 예술에 더욱 모든 것을 걸게 된다. 그러나 예술의 길 또한 재료비와 생활비 없이는, 누군가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 없이는 유지가 어려운 길이었다. 테오에게 물감과 캔버스 비용, 작업실 유지비를 부탁하는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그의 글 속에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열정과 환희가 담겨 있다. 공쿠르 형제처럼 함께 원하는 길을 걸어감으로써 테오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고흐에게는 있었다. 그 꿈을 테오조차도 믿지 않았지만, 결국은 공쿠르 형제보다 더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고흐와 테오는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고흐는 믿었다. 위대한 일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그리고 고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테오를 부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걸어가지 못하는 테오를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고흐는 자신이 테오의 응원 없이는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인정하며 이렇게 쓴다. “나에게 제2의 아버지는 바로 너니까.” ‘너는 절대 안 된다’는 세상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맞서는 것. 그것이 고흐의 간절함이었다. 나는 고흐의 그림을 볼 때마다 ‘당신 같은 그림은 절대 안 된다’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나아가는 한 눈부신 젊은이를 본다. 나는 고흐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깨닫는다. ‘절대 안 된다’는 말에 지지 않을 용기, 바로 그 간절함이 내가 여전히 고흐를 사랑하는 이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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