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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체육혁신? 꿈나무 새순까진 자르지 말길

박민영 문화레저부 차장





13세 소년이 메말라가는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재능 있는 어린이를 발굴하는 한 TV 프로그램이 얼마 전 소개한 경남 산청의 레슬링 소년 이유신군 때문에 눈물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내용은 이랬다. 6학년 유신이는 지난해 12월 열린 전국레슬링종합선수권대회에서 산청군 유일의 초등부 선수로 참가해 34㎏급 금메달을 차지했다. 체구는 작지만 뛰어난 운동신경과 순발력,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투지와 연습으로 레슬링 시작 1년 만에 각급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고된 훈련에도 항상 밝은 모습은 어려운 환경과 대비됐다. 부모는 유신이가 태어난 지 16개월 만에 결별했고 타지에서 생계를 꾸려나간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편치 않은 홀몸으로 딸기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는 운동하는 손자에게 끼니마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마음이 미안하다. 유신이는 거의 유일한 버팀목인 할아버지가 고생하시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유신이는 작은 체격 때문에 걱정이다. 중등부 최저 체급인 39㎏까지 체중을 불려야 하는데 한두 끼니는 빵으로 때워야 하는 형편에서는 쉽지가 않다. 한 체급 높은 중학생과의 연습 경기에서 힘의 차이를 느끼고 풀이 죽은 유신이를 제작진은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으로 데려간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정지현 국가대표 코치를 만난 유신이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해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할아버지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며 활짝 웃는다.



선수촌에 도착해 ‘국가대표 선수의 요람’이라고 쓰인 간판을 바라보던 유신이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 코치가 “지금도 작지만 나도 어릴 때 너처럼 작았어…열정만 있으면 여기(선수촌)서 볼 수 있다”고 말해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요즘 체육계가 ‘혁신’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폭력·성폭력 등 비위가 드러났고 대통령이 직접 합숙 체계와 도제식의 억압된 훈련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면서 엘리트 체육이 도마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소년체전 폐지, 국가대표 합숙훈련 폐지 등을 개선안으로 들고 나오자 엘리트 체육을 관장하는 대한체육회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체육계 비위를 예방하고 없애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선수가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에 즉각 반응해 내놓는 혁신안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백년대계로서 충분한 검토를 거친 것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체육인 전체를 죄인처럼 바라보는 시각, 그동안 땀 흘려 이룬 선수들의 성과는 덮어두고 특정 부분만 주목하는 인식이 내재했다는 반론이 나온다. 합숙훈련과 소년체전 폐지 등의 주장은 일이 터졌을 때 시스템 개선 노력보다 과거 부정부터 하고 보는 우리 사회의 일면처럼 느껴져 씁쓸하기도 하다.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논의는 환영할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꿈나무들의 새순까지 잘라내는 우(愚)는 범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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