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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⑧ ·끝-사회] 편견→차별→범죄 연결...사회적 규제로 '혐오의 피라미드' 없애야

■갈등·혐오 치닫는 사회-전문가 진단

학교 등서 시민교육·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규제 효과 높이려면 차별금지법 만들어 피해 막아야

美선 종교·인종·출신국 이유로 차별 땐 최대 징역1년





“혐오표현이 없는 다른 콘텐츠를 구독해요.” “혐오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아요.”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 인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모여 혐오표현에 맞설 행동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청소년들이 직접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하는 혐오표현의 실태를 인식하고 혐오표현 관련 대책을 논의해보는 ‘체험형 성교육’의 하나로 지난해 하반기 도입됐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 중 일부는 강사에게 “선생님도 페미(페미니스트)예요?”라는 질문을 쏟아내며 성차별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똥꼬충(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친구들이 쓰니깐 썼다”고 털어놓은 학생도 있었다. 센터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직접 혐오표현을 듣고 반응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급식충’과 같은 표현에서처럼 청소년들 자신도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을 인지시키고 혐오와 관련된 인식을 전환하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편견·혐오·차별은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지속 영위하는 데 큰 걸림돌이다. 특히 이들은 증오범죄 등으로 연결될 수 있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동반한다. 하지만 각종 혐오와 차별 현상 등은 결국 개인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구조적인 현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어 이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고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혐오표현인가… ‘가이드라인’ 필요=혐오표현의 시작은 편견이다.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농담, 몰이해적인 발언 등이 집단적으로 강화돼 혐오표현으로 자리 잡는다. 혐오표현이 확산하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 차별 행위로 이어지고 결국 증오범죄로 드러나게 된다. 이 같은 ‘혐오의 피라미드’를 없애기 위해 당장 정치적·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표현이 왜 나쁜지, 왜 문제가 되는지, 다른 나쁜 말과 어떻게 구별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하다”며 “(논의를 바탕으로) 학교나 회사·방송·정치 등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나 권력이 작동하는 조직에서는 혐오표현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혐오표현을 코너로 몰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 대학 교직원, 정부·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기자 등에서 90% 이상이 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대부분 혐오표현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이 문제 대응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혐오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현장에서 인권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유정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기획협력팀장은 “청소년들이 터놓고 얘기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의견도 있다는 점을 느끼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교육 자체가 입시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같이 살아가기 위한 윤리 인식이 현저히 낮다”며 “남녀 출신 지역, 피부색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대접받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민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교육 및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어 혐오·차별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교실에서 성차별·혐오표현을 하는 학생들의 언행 지도법을 제작·배포했지만 전국 몇 개 학교에 배포했는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교사들이 각자 인터넷에서 지도법을 내려받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도덕성 넘어 사회적 규제 마련해야=규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란 성별·연령·인종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법을 말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호주제 폐지를 놓고 지루할 정도로 오랜 기간 논쟁했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후 반대했던 사람들도 새 제도에 적응하고 생각을 바꿨다”며 “누구에게 차별을 당하면 바로 반응하도록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도덕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미류 공동집행위원장은 “혐오와 차별 문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우회해서 해결할 수 없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무엇이 차별이고 아닌지 얘기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특정 집단에 대한 정책이 아닌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원칙을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혐오·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인종·피부색·종교·출신국가를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벌금 또는 최대 1년 징역을 부과하도록 입법화돼 있다. 연방 차원에서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출신국가, 장애 등에 대한 편견으로 발생한 혐오범죄의 통계도 매년 공표하고 있다.

/김지영·오지현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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