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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⑧·끝-사회] 나와 다르면 '蟲'...온라인 익명성에 숨어 모욕·경멸 일상화

■갈등·혐오 치닫는 사회-배제·차별 받는 소수자들

성별·빈부·국적 막론하고 '다름'을 대결·타도 대상으로

신지예 위원장 "여성혐오 발언에 인간으로서 무력감"

중국동포 "짱깨 소리, 마음아파" 난민 "소외감에 위축"





타협과 포용을 거부하는 ‘혐오’가 우리 사회의 암 덩어리로 똬리를 틀어가고 있다. 성별·세대·국적·빈부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름’은 그저 단순한 차이를 넘어 ‘대결’과 ‘타도’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갈수록 확대되는 빈부격차 속에 취업난과 과도한 경쟁, 능력지상주의가 혐오라는 ‘사회적 괴물’을 낳고 있는 것이다. 혐오는 대상뿐만 아니라 영토도 급속히 넓혀가고 있다. 지난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오가던 혐오는 이후 오프라인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더군다나 혐오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옮아갔다. 지난해 주말마다 서울 혜화역을 뜨겁게 달군 ‘불편한 용기’의 여권신장 집회, 제주 예맨 난민 문제로 촉발된 난민반대 집회가 그 대표 사례다.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여혐·남혐’ 발언이 계기가 돼 남녀 간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울경제신문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혐오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낙인 찍힌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봤다. △녹색당 신지예(30) 공동위원장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 로넬(47)씨 △조선족 김용선(43) 한마음회장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박현(45)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 △남성 동성애자 A(26)씨가 그들이다.

소수자들이 듣는 혐오표현은 익히 알고 있는 ‘맘충’ ‘틀딱충’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당사자 앞에서 직접 혐오표현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폭력적 언어, 경멸하는 눈빛 등 비언어적 의사소통까지 모두 이들에게는 혐오표현으로 다가온다. 혐오를 드러내는 일체의 언어와 행동은 소수자들이 오랜 시간 쌓아올린 그들의 ‘존엄’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신 공동위원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경험을 언급하며 “댓글과 메시지를 통해 ‘칼로 가슴을 도려내겠다’ ‘쇠파이프로 머리를 쳐버리겠다’ 등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폭력적 언어를 일상적으로 들었다”며 “인간으로서 무력감이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은 동료 조선족과 지하철에서 중국말로 대화할 때 들은 혐오표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갑자기 한 아이가 우리에게 대뜸 ‘짱깨’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옆에 있던 엄마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혼냈지만 아이는 곧장 ‘엄마한테’라고 말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 외에도 소수자들은 ‘병신’ ‘똥꼬충’ ‘난민충’ 등 혐오표현은 물론 경멸을 담은 비언어적 의사표현에 수시로 노출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혐오는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무너뜨리며 힘을 키워갔다. 혐오의 대상이 된 이들은 정서적 위축은 물론 행동까지 변한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다수가 나를 ‘병신’으로 대하는데 결국에는 ‘내가 문제다’라고 인정하게 된다”며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몸이 불편해서 안 된다’는 반응을 접하다 보면 꿈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넬씨는 “처음에 한국에 올 때는 자신만만하던 친구들도 무시와 멸시를 받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고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남성 동성애자인 A씨는 “동성애자 혐오표현을 봐도 이제는 심정적 동요도 없다”며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고 결국 체념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여학생이 지난해 11월3일 서울 세종대로 서울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스쿨미투 집회에 참석해 학교에서 들었던 혐오발언 등을 적고 있다./연합뉴스


이들은 혐오표현이 최근 들어 갑자기 심해졌다는 데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소수자들은 늘 혐오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다만 공공의 영역에서 혐오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으로는 우익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의 등장을 꼽았다.

신 공동위원장은 “일베 등장 이후 혐오를 드러내는 게 거리낌 없어진 것 같다”며 “능력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본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정서가 온라인의 익명성과 결합해 혐오가 일상화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영화 등 대중매체가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소재로 삼았고 이를 받아들인 개인방송이 확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개인방송 진행자가 조선족을 향해 ‘왜 한국 땅에 빌붙냐’고 모욕한 적이 있다”며 “영화 ‘청년경찰’ 등 조선족을 마치 범죄자 집단처럼 묘사하는 것도 이 같은 인식을 강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수자들은 오히려 혐오가 표면으로 드러난 지금을 연대의 기회로 봤다. 속으로만 아픔을 참아왔던 소수자들이 힘을 모으면 사회적 인식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 회장은 “최근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현상은 긍정적”이라며 “우리가 나빠서 권리를 빼앗긴 게 아닌 만큼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연대해 권리를 지켜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들은 주류 세력의 이해도 바랐다. 로넬씨는 “한국도 한때는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난민이 발생하지 않았냐”며 “한국 사람들이 그런 과거를 잊지 않으면 난민을 비롯한 소수자들과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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