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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빙빙 실종' '성탄절 트리 금지'...시진핑 이후 중국엔 무슨 일이?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 폐지로 '시황제' 장기독재 길 열어

덩샤오핑 유훈 뒤집고 '중국몽' 내세우며 미국과 패권 싸움

사회 전반에 '실종' 공포 만연… 사상통제·사유재산 퇴보도

마오쩌둥 반열에 오른 시진핑의 정책 오류 땐 한국에도 재앙





지난해 말 중국 당국은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유명 지하교회 3곳의 문을 닫았습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성탄절 양말이나 산타클로스 인형 등을 못 팔도록 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전세계에 유통되는 인조 크리스마스트리의 60%가 중국산인데도 말이죠.

지난해 10월에는 세계적인 스타인 판빙빙이 실종 3개월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도 공개 석상이 아닌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자신의 탈세에 대한 처절한 반성문을 쓰면서 말이죠. 이 모두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6년 10월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주창한 이후 벌어진 사건인데요. 도대체 지금 중국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최대 4,000만명이 사망한 마오쩌둥 시대의 비극

이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국부 마오쩌둥(1893~1976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인 독재자였던 마오쩌둥은 1958년 대약진운동을 추진합니다. 소련과 갈등을 빚으면서 농업국가인 중국을 하루빨리 중공업 국가로 바꾸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엉터리 정책이 문제였죠. 마오쩌둥은 농민들이 작은 용강로를 만들어 철강을 직접 생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농민들은 할당량을 채우려 고철은 물론 집에서 쓰는 식기류, 양철지붕, 멀쩡한 농기구마저 용광로에 집어넣었습니다. 용광로 연료로 쓰려고 산을 무자비하게 벌목한 탓에 산사태가 빈발하고 농경지마저 망쳤습니다.



황당한 사례를 하나 더 볼까요. 마오쩌둥은 농촌을 시찰하다가 참새가 먹는 곡식 낟알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대적인 참새 소탕 작전이 벌어졌고 1년 동안 참새 2억 마리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참새들의 저주가 시작됐죠. 천적인 참새가 없어지자 해충만 신나서 번식했고 유례없는 흉작이 발생했습니다. 뒤늦게 소련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수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중국 당국은 당시 1,0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고 발표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최대 4,000만명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마오쩌둥은 1962년 국가 주석직에서 물러납니다. 무너진 경제 회복을 위해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 실용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정책을 일부 도입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중용하려 합니다. 성과도 나타나면서 이들이 새로운 권력 실세로 등장합니다.



정치적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조장합니다. 전통적인 유교문화와 자본주의에 철퇴를 가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자는 것이었죠.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과 낡은 문화를 타도하자며 덩샤오핑과 같은 반대파를 공격합니다. 특히 마오쩌둥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악명높은 홍위병을 조직하죠. 홍위병들은 교사, 지식인 등을 마구잡이로 공격합니다.

수십만명이 처형됐고 300만 명의 공산당원이 숙청됐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자아비판을 강요하고 학생이 교사를 사상 교육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국가는 경제적 피폐, 사회 혼란, 홍위병들 간의 내분 등으로 난장판이 됐죠. 결국 마오쩌둥의 권위는 약화됐고 경제성장, 교육개혁,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주장하던 덩샤오핑이 권력에 복귀하죠.

◇‘집단지도체제’ 덩샤오핑의 유훈 뒤엎은 시진핑

문화혁명의 광기를 겪은 중국은 1인 독재는 반드시 국가적 재앙으로 끝난다는 교훈을 얻었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동시에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한 이유입니다. 덩샤오핑은 사실상 최고지도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국가주석 직은 한 번도 맡지 않았습니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지배하는 권력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공산당 최고 결정기구는 7명 또는 9명으로 이뤄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입니다. 최고위직인 총서기도 1인 1표만 행사할 수 있고 중대 결의사안은 공동으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또 헌법에 국가 주석은 2번(각각 5년씩 총 10년) 이상 연임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하이 지역 인맥인 상하이방, 공산당 청년 조직 출신인 공청단, 고위층 자녀로 이뤄진 태자당 등 3대 계파가 상호 견제하며 권력을 나눠먹는 전통도 수립됩니다. 장쩌민와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각각 상하이방, 공청단 출신입니다.

시진핑은 이들 계파의 권력투쟁 와중에 국가주석 자리에 오릅니다. 상하이방과 공청단이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다가 상대적으로 세가 약했던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을 후계자로 삼기로 합의했죠. 원래 가장 강력한 국가주석 후보는 공청단 출신의 리커창 총리였다고 하네요. 맛있는 떡을 경쟁자가 먹는 꼴은 못 보겠고 만만해 보였던 계파에게 줘 버린 것이죠.

하지만 사람 좋은 줄만 알았던 시진핑은 국가주석에 오르자 숨겨놓았던 호랑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부정부패 척결을 빙자해 정적들을 하루 둘 제거합니다. 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요직을 모두 자기 사람들로 채우기 시작하죠. 군에서는 경쟁적으로 충성 맹세를 받고요. 급기야 그는 지난해 3월 국가 주석을 3연임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며 장기집권의 길을 엽니다.



특히 헌법 서문의 문구에 ‘시진핑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합니다. 시진핑 사상이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론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지요. 시진핑은 “당정군민학, 동서남북중,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黨政軍民學,東西南北中,黨是領導一切的)”는 마오쩌둥(毛澤東)시대의 구호를 부활시켰습니다. 대외적으로 중국몽, 그러니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합니다. 이후 중국에는 사상검열과 같은 극좌주의, 중화민족이 최고라는 뒤틀린 애국주의, 외국 문물에 대한 배타주의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시진핑, 마오쩌둥 반열 오르며 우상화 움직임

이제 중국 전역에는 시진핑을 마오쩌둥에 비유하며 우상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덩샤오핑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이 제작한 그림에서 시진핑 주석의 모습이 한가운데 크게 나오고 정작 덩샤오핑은 동상으로 뒤에 작게 나오는 게 대표적인 사례지요. 심지어 중국 언론들은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이 개혁개방을 이끈 지도자라며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덩샤오핑의 권위를 넘어서려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덩샤오핑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제작한 기념화. 시진핑 주석의 모습은 가운데 크게 나오는데 비해 덩샤오핑 동상은 맨 뒤에 작게 처리돼 있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외교 유훈인 ‘도광양회(빛을 감추어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를 뒤집었습니다. 그는 대국굴기, 중국몽, 강군몽(强軍夢)을 역설하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미중간의 무역전쟁도 이 와중에 발생했지요. 덩샤오핑의 장남인 덩푸팡은 참다 못하고 시진핑에 대해 “중국은 제 주제파악부터 해야 한다”며 일격을 가하기도 했지요.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주도로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주창한 이후 사상 통제도 강화되고 있는데요. 앞서 언급한 ‘크리스마스 금지령’이 대표적이죠. 일부 도시에서는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야외 크리스마스 공연이나 종교활동을 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했고 시민들이 이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도록 했습니다. 서방 문화가 침투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양말이나 사과, 산타클로스 인형 등을 파는 것을 대대적으로 단속했죠. 2016년만 하더라도 연말이면 중국에서도 성탄절 분위기가 났는데 말이죠.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는 사람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아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묻지만 나는 ‘아빠는 괴물을 무찌르러 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7월 인권변호사인 왕취안장의 아내 리원주의 하소연입니다.2015년 7월9일에는 인권운동가 등 300여명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연행돼 실종됐는데요. 이들은 고문 등에 시달려야 했고 일부 인사는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가족에게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처음에는 인권운동가 등 반체제 인사들이나 반대 계파의 관료 등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시진핑 1인 독재체제가 굳어지고 애국주의, 사상검열이 심화되면서 유명 배우, 재벌로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앞서 언급한 판빙빙이 대표적이죠. 중국 정부가 평소 튀는 언행을 일삼는 판빙빙을 본보기로 삼아 자유분방해지기 쉬운 연예계를 길들이고 있는 것이죠. 뉴요커는 “판빙빙이 ‘시 주석에 버금가는’ 명망을 누린 괘씸죄를 받았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재벌들의 실종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중국 재계의 거물인 밍톈(明天) 그룹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은 지난해 홍콩 호텔에서 휠체어를 타고 머리가 가려진 채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끌려가기도 했죠. 양즈후이(仰智慧) 란딩(藍鼎)국제개발 회장,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안방(安邦)보험그룹 회장, 화신(華信)에너지공사(CEFC)의 예젠밍(葉簡明) 회장 등도 갑자기 실종되기도 했죠.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출신의 멍훙웨이 인터폴 총재가 모국으로 출장을 간다더니 갑자기 일주일 넘게 실종돼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죠. 중국 공안부는 뒤늦게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기구의 총수마저 사라지는 판이니 중국 사회에 만연한 ‘실종 공포’가 얼마나 클 지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네요.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갔다”

심지어는 사유재산권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시진핑 정부는 민영기업을 서서히 퇴장시키고 국영기업 역할을 늘린다는 ‘국진민퇴(國進民退)’ 정책을 펴고 있는데요. 최근 자금난에 빠진 민영기업이 국유기업에 속속 인수되고 민영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숙청’되거나 자리에서 밀려나는 있습니다.

중국 알리바바 회장인 마윈은 잘 아시죠. 그는 지난해 9월 갑작스레 은퇴 선언을 했는데요. 자신의 꿈인 교사로 돌아가겠다고 밝혀 ‘아름다운 은퇴’라고 포장됐는데요.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갈등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회장직은 물론 알리바바 소유권까지 포기했다고 홍콩 언론이 분석했습니다.



마윈은 10월 한 공식석상에서 “정부는 정부가 할 일을 하고, 회사는 회사가 할 일을 해야 한다”며 뼈있는 발언을 내놓았는데요. 우회적으로 공산당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쯤 되면 “시진핑 개인숭배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마오쩌둥 1인 독재로 홍역을 앓던 문화혁명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지적이 기우로만 보이지는 않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시진핑은 문화혁명의 희생자입니다. 아버지 시중쉰이 ‘반당 분자’로 몰리자 15세부터 7년간 농촌으로 내려가 토굴에서 살며 강제 노역자와 다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시진핑이 국가 시스템을 당시로 후퇴시키고 있는 셈이지요.



◇‘1인 독재’ 시진핑의 정책 오류는 한국에도 재앙

중국에 불고 있는 중화패권주의, 애국주의, 극좌주의 바람은 한국도 크게 걱정해야 하는 문제인데요.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이라는 독재자의 오류가 얼마나 큰 비극을 몰고 왔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문화혁명 때는 최고 지도자의 판단 오류에 따른 파장이나 비극이 중국 내부로 한정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중국몽’ ‘대국굴기’ ‘군사굴기’ 등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에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진핑이 정책 오류를 저지르면 한국, 동남아 등 주변부 국가들이 어떤 유탄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당장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미국과 무역갈등이 더 커지면 한국경제도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2016년 4월 발간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사진. 타임지는 ‘개인 숭배를 원하는 중국의 제왕’이라는 제하의 기사와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을 마오쩌둥 초대 국가주석에 비유했다.


중국 내부를 보면 빈부격차, 도농간 격차, 환경오염, 소수민족의 저항, 공산당 독재의 비효율성, 경기둔화, 다른 정치 계파의 반발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물론 지금 시진핑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지고 있고 ‘시황제’에 도전하는 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진핑의 ‘중국몽’ 구상에 미국 등 서방의 반발이 커지고 중국 내부의 모순이 격화된 가운데 다른 정치세력의 반격이 시작될 경우 그 파장은 예측조차 힘듭니다. 자정 기능이나 견제 능력을 잃은 1인 독재란 항상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이지요. 우리가 시진핑 이후 중국 내부의 움직임을 경계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종호기자 이다원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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