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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 ‘내 탓이오’를 보고 싶다

논설실장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

잘못된 정책으로 초래된 고용쇼크

前정부 탓만 해선 절대 해결 못해

실패 인정하고 현실성 있는 정책을

오철수 논설실장




지난 1990년대 초 거리를 다닐 때면 자동차 뒷유리창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천주교평신도협의회가 1988년 평신도의 날을 맞아 전개하기 시작한 신뢰회복운동이다. 이 운동은 사회윤리와 도덕성 타락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부터 앞장서서 사회를 정화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당시 천주교 서울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도 자신의 승용차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자기를 먼저 돌아볼 때”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 운동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확산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행동이 잘못됐을 때 남이 아닌 자신부터 돌아보자는 가르침은 다른 종교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도 수필집 ‘맑고 향기롭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세상일이란 거저 되는 일도 없고 공것도 절대로 없다. 얼핏 눈앞의 단면만 보면 거저와 공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가두는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니 남 탓을 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교계의 이 가르침대로만 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것이 좀처럼 실천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것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야 할 정치인과 정부 인사들이 남 탓을 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까지 하다. 고용쇼크의 원인을 둘러싼 네 탓 타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권 경쟁이 한창이던 지난달 경제위기론이 불거지자 느닷없이 지난 정권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산업 구조개선을 소홀히 한 채 4대강을 비롯한 토목 건설과 대기업 위주의 정책에만 힘쓰다 보니 경제 체질이 약해져 고용위기가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100년 적폐와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의 추미애 의원도 “과거 허약해진 경제 체질이 지금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실업자 수가 8개월 연속으로 1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극심한 고용절벽이 지난 정권의 탓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네 탓 타령은 청와대 인사도 예외가 아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고용 악화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 탓이라는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며 “건설업에서 (고용 수치가) 크게 줄어든 것은 과거 정부에서 했던 공사들이 완료되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이 말이 맞는다면 소상공인들이 생계를 팽개쳐두고 거리로 뛰쳐나와 최저임금의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 때문에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어디에도 전 정권을 원망하는 목소리는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2년에 걸쳐 무려 29%나 최저임금을 올렸으니 눈물을 머금고 데리고 있던 직원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소상공인들이 “나를 잡아가라”며 최저임금 불복종운동까지 벌이겠는가.

지금 미국과 일본 등 우리의 경쟁국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규제개혁과 법인세 인하 등으로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정반대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 일변도다. 여기에 각종 규제와 법인세 인상까지 하고 있으니 국내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이전 정권 탓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물론 이전 정권에서 미흡했던 산업 구조조정 등이 고용 시장에 영향을 줬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정부나 이전 정권으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을 수는 없다. 지난 정권의 좋은 점은 더 좋게 발전시키고 잘못된 점은 개선하는 것이 현재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과거 정부의 잘못만 탓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제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남 탓만 하면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보이고 있는 고용대란은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 당정청도 이참에 ‘내 탓이오’ 운동을 한번 벌여보는 것은 어떨까.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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