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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존리포트] 갈라선 한국...국민 80% "혐오·갈등 심각"
사회 사회일반 2019.01.31 17:48:45지난해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서울 ‘혜화역 시위’와 ‘몰카(불법촬영)’ 사건 등은 우리 사회를 남과 여 둘로 갈라놓았다. 인터넷상에는 ‘김치녀(사치스러운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 ‘한남충(한국 남성은 벌레라는 의미의 신조어)’ 같은 혐오 표현이 난무하면서 성 대결 양상을 넘어 인식차이로 인한 세대와 이념의 극단적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불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증폭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세대·이념 문제를 넘어 빈부·젠더 문제 등으로 갈려 갈등과 혐오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1일부터 29일까지 548명을 상대로 ‘한국 사회의 갈등·혐오 문제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8.1%(483명)가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매우 심각하다’와 ‘조금 심각하다’는 답변이 각각 40.7%, 47.4%에 달한 반면 ‘아주 심각하지 않다’와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각각 3.8%, 0.4%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극단적 갈등을 나타내는 혐오현상도 더욱 악화했다. ‘한국 사회의 혐오 및 차별 문제가 과거에 비해 심각해졌다’는 답변은 83%로 ‘심각해지지 않았다(4.4%)’는 답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이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면서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비판적 인식이 높아진 결과다. 실제 과거보다 갈등 분야도 넓어졌다. 국민들이 꼽은 주요 갈등요소는 고질적인 빈부(55.5%), 이념(46.4%), 지역(27.2%)간 문제부터 젠더(51.8%), 세대(40.3%), 다문화(17.2%) 문제로 다양했다. 소득격차 확대 등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가 가장 큰 문제로 꼽혔고 지난해 화두로 떠오른 남성혐오·여성혐오 등 극단으로 치닫는 젠더 갈등과 세대 간 시각차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사회갈등 요인 완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 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합리적으로 해소되지 못하면서 발전을 저해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 오히려 재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정부의 역할 부재로 인한 법·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있고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인 사회적 공론의 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
'맘충' '틀딱충' '한남' '쿵쾅이'…혐오가 일상인 사회
사회 사회일반 2019.01.31 17:37:14타협과 포용을 거부하는 ‘혐오’가 우리 사회의 암 덩어리로 똬리를 틀어가고 있다. 성별·세대·국적·빈부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름’은 그저 단순한 차이를 넘어 ‘대결’과 ‘타도’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갈수록 확대되는 빈부격차 속에 취업난과 과도한 경쟁, 능력지상주의가 혐오라는 ‘사회적 괴물’을 낳고 있는 것이다. 혐오는 대상뿐만 아니라 영토도 급속히 넓혀가고 있다. 지난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오가던 혐오는 이후 오프라인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더군다나 혐오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옮아갔다. 지난해 주말마다 서울 혜화역을 뜨겁게 달군 ‘불편한 용기’의 여권신장 집회, 제주 예맨 난민 문제로 촉발된 난민반대 집회가 그 대표 사례다.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여혐·남혐’ 발언이 계기가 돼 남녀 간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울경제신문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혐오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낙인 찍힌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봤다. △녹색당 신지예(30) 공동위원장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 로넬(47)씨 △조선족 김용선(43) 한마음회장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박현(45)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 △남성 동성애자 A(26)씨가 그들이다. 소수자들이 듣는 혐오표현은 익히 알고 있는 ‘맘충’ ‘틀딱충’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당사자 앞에서 직접 혐오표현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폭력적 언어, 경멸하는 눈빛 등 비언어적 의사소통까지 모두 이들에게는 혐오표현으로 다가온다. 혐오를 드러내는 일체의 언어와 행동은 소수자들이 오랜 시간 쌓아올린 그들의 ‘존엄’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신 공동위원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경험을 언급하며 “댓글과 메시지를 통해 ‘칼로 가슴을 도려내겠다’ ‘쇠파이프로 머리를 쳐버리겠다’ 등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폭력적 언어를 일상적으로 들었다”며 “인간으로서 무력감이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은 동료 조선족과 지하철에서 중국말로 대화할 때 들은 혐오표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갑자기 한 아이가 우리에게 대뜸 ‘짱깨’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옆에 있던 엄마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혼냈지만 아이는 곧장 ‘엄마한테’라고 말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 외에도 소수자들은 ‘병신’ ‘똥꼬충’ ‘난민충’ 등 혐오표현은 물론 경멸을 담은 비언어적 의사표현에 수시로 노출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혐오는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무너뜨리며 힘을 키워갔다. 혐오의 대상이 된 이들은 정서적 위축은 물론 행동까지 변한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다수가 나를 ‘병신’으로 대하는데 결국에는 ‘내가 문제다’라고 인정하게 된다”며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몸이 불편해서 안 된다’는 반응을 접하다 보면 꿈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넬씨는 “처음에 한국에 올 때는 자신만만하던 친구들도 무시와 멸시를 받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고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남성 동성애자인 A씨는 “동성애자 혐오표현을 봐도 이제는 심정적 동요도 없다”며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고 결국 체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혐오표현이 최근 들어 갑자기 심해졌다는 데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소수자들은 늘 혐오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다만 공공의 영역에서 혐오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으로는 우익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의 등장을 꼽았다. 신 공동위원장은 “일베 등장 이후 혐오를 드러내는 게 거리낌 없어진 것 같다”며 “능력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본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정서가 온라인의 익명성과 결합해 혐오가 일상화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영화 등 대중매체가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소재로 삼았고 이를 받아들인 개인방송이 확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개인방송 진행자가 조선족을 향해 ‘왜 한국 땅에 빌붙냐’고 모욕한 적이 있다”며 “영화 ‘청년경찰’ 등 조선족을 마치 범죄자 집단처럼 묘사하는 것도 이 같은 인식을 강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수자들은 오히려 혐오가 표면으로 드러난 지금을 연대의 기회로 봤다. 속으로만 아픔을 참아왔던 소수자들이 힘을 모으면 사회적 인식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 회장은 “최근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현상은 긍정적”이라며 “우리가 나빠서 권리를 빼앗긴 게 아닌 만큼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연대해 권리를 지켜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들은 주류 세력의 이해도 바랐다. 로넬씨는 “한국도 한때는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난민이 발생하지 않았냐”며 “한국 사람들이 그런 과거를 잊지 않으면 난민을 비롯한 소수자들과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⑧·끝-사회] 1030 '젠더' 40대 '빈부' 5060 '이념'...세대별 최대 갈등요소 인식차
사회 사회일반 2019.01.31 17:36:09한국사회가 다양한 영역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갈등의 원인이거나 가해자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저조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적 갈등 해소를 막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연령별·성별로도 갈등요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이해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한 ‘한국사회의 갈등·혐오 문제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생생활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혐오표현이나 차별을 경험했다’는 답변이 75.4%에 달했다. 반면 ‘인터넷이나 일생생활에서 혐오표현이나 차별적 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5.7%가 ‘없다’고 답했다. 대다수가 세대 간, 성별, 이념이 다른 집단의 피해자라는 의미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자신이 당한 피해에는 민감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도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한 이중성으로 해석된다”며 “자신이 차별행위에 대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갈등은 연령별로도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10대(36.8%)와 20대(39.0%), 30대(23.5%)는 어느 정도 자신도 가해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40대(11.3%), 50대(9.1%), 60대(16.7%)에서 가해자라고 인정하는 비율이 크게 떨어져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갈등을 특정 세대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소에 대해서도 연령대별로 인식 차이를 보였다. 10~30대는 ‘젠더’ 문제를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로 꼽은 반면 40대는 ‘빈부’ 문제를, 50~60대는 ‘이념’ 문제를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로 꼽았다. 성별로도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요소에 대해 여성은 빈부(21.2%), 젠더(20.7%), 이념(14.2%) 순으로 꼽은 반면 남성은 이념(20.3%), 젠더(18.6%), 계층(15.0%)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봤다. 이 소장은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갈등의 체감도가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며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갈등 중 하나인 세대와 젠더 갈등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고용문제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삶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갈등의 심각성을 달리 보는 연령·세대 간 인식 차가 해소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78.3%가 ‘제정해야 한다’고 답해 연령별·성별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혐오표현과 차별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민주·인권교육 강화’가 42.9%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법·제도를 통한 규제·처벌 강화(26.3%), 정치권 및 언론·종교계의 각성(22.8%), 범정부적 캠페인(6.4%) 등의 순으로 답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⑧ ·끝-사회] 편견→차별→범죄 연결...사회적 규제로 '혐오의 피라미드' 없애야
사회 사회일반 2019.01.31 17:20:10“혐오표현이 없는 다른 콘텐츠를 구독해요.” “혐오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아요.”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 인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모여 혐오표현에 맞설 행동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청소년들이 직접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하는 혐오표현의 실태를 인식하고 혐오표현 관련 대책을 논의해보는 ‘체험형 성교육’의 하나로 지난해 하반기 도입됐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 중 일부는 강사에게 “선생님도 페미(페미니스트)예요?”라는 질문을 쏟아내며 성차별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똥꼬충(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친구들이 쓰니깐 썼다”고 털어놓은 학생도 있었다. 센터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직접 혐오표현을 듣고 반응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급식충’과 같은 표현에서처럼 청소년들 자신도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을 인지시키고 혐오와 관련된 인식을 전환하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편견·혐오·차별은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지속 영위하는 데 큰 걸림돌이다. 특히 이들은 증오범죄 등으로 연결될 수 있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동반한다. 하지만 각종 혐오와 차별 현상 등은 결국 개인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구조적인 현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어 이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고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혐오표현인가… ‘가이드라인’ 필요=혐오표현의 시작은 편견이다.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농담, 몰이해적인 발언 등이 집단적으로 강화돼 혐오표현으로 자리 잡는다. 혐오표현이 확산하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 차별 행위로 이어지고 결국 증오범죄로 드러나게 된다. 이 같은 ‘혐오의 피라미드’를 없애기 위해 당장 정치적·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표현이 왜 나쁜지, 왜 문제가 되는지, 다른 나쁜 말과 어떻게 구별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하다”며 “(논의를 바탕으로) 학교나 회사·방송·정치 등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나 권력이 작동하는 조직에서는 혐오표현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혐오표현을 코너로 몰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 대학 교직원, 정부·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기자 등에서 90% 이상이 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대부분 혐오표현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이 문제 대응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혐오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현장에서 인권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유정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기획협력팀장은 “청소년들이 터놓고 얘기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의견도 있다는 점을 느끼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교육 자체가 입시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같이 살아가기 위한 윤리 인식이 현저히 낮다”며 “남녀 출신 지역, 피부색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대접받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민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교육 및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어 혐오·차별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교실에서 성차별·혐오표현을 하는 학생들의 언행 지도법을 제작·배포했지만 전국 몇 개 학교에 배포했는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교사들이 각자 인터넷에서 지도법을 내려받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도덕성 넘어 사회적 규제 마련해야=규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란 성별·연령·인종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법을 말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호주제 폐지를 놓고 지루할 정도로 오랜 기간 논쟁했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후 반대했던 사람들도 새 제도에 적응하고 생각을 바꿨다”며 “누구에게 차별을 당하면 바로 반응하도록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도덕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미류 공동집행위원장은 “혐오와 차별 문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우회해서 해결할 수 없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무엇이 차별이고 아닌지 얘기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특정 집단에 대한 정책이 아닌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원칙을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혐오·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인종·피부색·종교·출신국가를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벌금 또는 최대 1년 징역을 부과하도록 입법화돼 있다. 연방 차원에서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출신국가, 장애 등에 대한 편견으로 발생한 혐오범죄의 통계도 매년 공표하고 있다. /김지영·오지현기자 jikim@@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표현의 자유 침해" "동성애 조장"...10년새 6건 발의했지만 모두 좌초
사회 사회일반 2019.01.31 17:04:20사회 곳곳에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법 제정 움직임은 10년 넘게 제자리다. 입법화할 때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동성애 조장 등을 이유로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영역을 넘어 각종 서비스, 법령 정책의 집행 등 분야에서 차별받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법처럼 차별 금지를 규정한 개별법들은 현재도 있지만 주로 고용 영역에 한정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앞으로 3년 내 차별금지법안을 마련해 발의까지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당시 법안은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 민족, 출신 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정치, 혼인, 임신, 사회 신분 등을 이유로 정치·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이유 없는 차별을 방지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차별 행위에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을 차별행위자에게 지우고 차별 중지, 손해배상 등의 판결을 할 수 있게 명시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은 정부 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차별금지 사유로 병력, 학력, 성적 지향, 가족 형태, 출신 국가, 출산 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차별뿐만 아니라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은 데 따른 차별 영역까지 차별 금지 영역으로 포함했다. 이외에 김한길 의원, 김재연 의원, 최원식 의원 등이 유사한 내용으로 차별금지법안을 저마다 내놓았지만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종교계 등에서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장려한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총 6건의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2건이 철회됐고 4건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과거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성적 취향 부분을 두고 반대가 심하니 입법화 과정에서 성적 취향을 빼고 제정했다가 나중에 법 개정할 때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밝힌 인권위에서도 법안 마련부터 발의까지 상당한 진통을 예상하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많은 오해와 이견이 있는 만큼 법안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면서 “모든 사안마다 사회의 공감대를 만들고 같이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3년 후 위원장직을 끝낼 때는 이런 과정이 빛을 발하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과 별개로 혐오표현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성별·장애·병력 등에 따른 차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차별·폭력·증오를 선동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내용의 혐오 표현 규제 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 종교계 벽에 막혀 철회한 바 있다. 법안에는 혐오표현을 한 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 리포트 ⑦노동] '노동 vs 자본' 낡은 프레임에 갇혀...勞 '파업 만능주의' 매몰
사회 사회일반 2019.01.29 17:44:53“요새 민주노총이 총파업하면 국민 중 누가 눈 하나 깜짝이라도 합니까. 파업으로 얻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28일 밤 늦게까지 진행된 민주노총 67차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한 대의원은 이렇게 외쳤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을 사실상 확정 짓고 다음달부터는 총력투쟁과 총파업 등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대의원 내부에서는 투쟁에 대한 회의감도 많았다. 경사노위 무조건 불참안(958명 중 331명 찬성), 조건부 불참안(936명 중 362명 찬성)이 모두 부결된 것도 이 같은 회의감의 방증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대신 투쟁에 나서면서 노정 관계는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적 대화 복원을 외치기 전으로 되돌아갔다. 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1월 말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과 사용자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부 장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 위원장 등이 참가하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꾸려진 지 약 1년 만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만 하더라도 노동계는 수세에 몰렸고 이들의 투쟁은 여론의 일정한 지지를 받았다. 2013년 12월 한국노총은 민주노총 회관에 경찰 병력이 투입된 것에 항의하며 당시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가 이듬해 8월 복귀했다. 2015년 9월에는 노사정위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 및 사회적 대타협을 체결했지만 정부는 2016년 1월 ‘쉬운 해고’ 양대 지침으로 불리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용 지침’을 강행 처리해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를 불렀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계가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촛불혁명’을 통한 전 정권 탄핵 축출의 일등공신을 자임하며 각종 친노동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촛불 청구서’다. 노동계의 한 전문가는 “정부는 노동계 요구를 수용하는 가운데 고용쇼크, 주력 산업 부진위기가 닥치자 보완책을 마련했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이에 반발하며 투쟁을 외치는 게 현재 노사정 관계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 정부는 불완전하게나마 노동계가 요구한 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최저임금은 2018년 16.4%, 올해 10.9% 인상해 시간당 8,350원으로 뛰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맞춘 두자릿수 인상이다. 민주노총이 결사반대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방안도 주 52시간 근로단축 제도 시행에 따른 보완 성격이 강하다. 해고자의 노조원 자격 인정과 공무원의 노조 활동 허용 확대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역시 노동계가 먼저 요구한 사안이다. 민주노총 안팎에서는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 경쟁’이 노총 전체의 투쟁성을 강화한다는 의견도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똑같은 사업장이라도 위원장마다 계파가 나뉘어 현행 노조 지도부와 임금 등 단체협약을 맺어도 다른 계파에서 무효를 외치며 투쟁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며 “노무 담당자들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와는 애당초 타협을 기대하지 않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민주노총 내 산업별 노조 중 가장 큰 금속노조는 노사정 대화에서 얻을 게 없다고 보고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해왔다. 금속노조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과의 기존 연대 노선을 멀리하고 급진 좌파 정당인 민중당과의 연대를 선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구나 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이번 대의원 대회에서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어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이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배수진을 치고 경사노위 참여를 안건으로 냈지만 투쟁 성향 정파를 압도하지 못해 사실상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김 위원장의 불신임을 거론하는 목소리들이 커지는 형국이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정권이 달라져도 주객만 바뀌어 계속되는 노사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국내 노사가 낡은 투쟁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세계 각국은 산업혁명 4.0시대를 맞아 양보를 통한 노사 상생을 추구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 노사는 아직도 산업혁명 1.0시대의 ‘노동계와 자본의 투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 리포트 ⑦노동] 勞반발로 공전하는 '광주형 일자리'...4개월째 터 닦기 손도 못대
사회 사회일반 2019.01.29 17:44:36지난 24일 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에 있는 빛그린국가산업단지. 광주시가 미래 친환경 자동차 산업생산 기지로 점찍은 곳이지만 땅을 파는 포크레인도, 건설자재를 운반할 트럭도 보이지 않았다. 406만6,000㎡에 달하는 드넓은 땅에는 근로자 한 명 없이 적막감만 흘렀다. 빛그린 산단이 4개월 넘게 개점휴업 상태다. 산단 용지를 관리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현장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산단 내에 현대자동차 위탁 공장이 들어설 부지가 19만평 정도인데 현대차와 광주시의 협상이 끝나지 않아 상하수도 공사, 도로 구획 등 기초 공사를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활발하던 지난해 9월에는 현대차 실무진이 방문해 부지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금 당장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계약을 맺어도 착공은 일러야 올가을 정도다. LH 관계자는 “완성차 공장의 특성상 대지를 평평하게 다져야 하고 부지 변경과 각종 설계 인허가까지 받으려면 6~7개월은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투자 결정이 늦어지면서 협력업체들도 빛그린 산단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LH는 지난해 11월 소규모 공장 필지 25곳을 시범 분양했지만 신청은 4필지에 그쳤고 실제 계약은 그중 1필지뿐이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한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산업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로 추진 중이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합작법인을 설립해 빛그린 산단에 연간 7만~10만대 규모의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공장을 세우는 프로젝트다. 자기자본 2,800억원, 차입금 4,200억원 등 총 7,000억원이 투입된다. 광주시는 현대차 생산직 평균 연봉의 절반 정도인 연 3,500만원, 주 44시간 근로 조건의 일자리를 조성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자리를 지키고 기업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직접 고용 1,000여명, 간접 고용까지 합해 약 1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정부는 특히 근로자의 임금을 낮춰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되 줄어든 임금을 국가가 주거·교육 등 복지로 보완하는 혁신 일자리 모델로 광주형 일자리에 주목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협상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권,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까지 적극 지원에 나선 이유다. 정부와 여당은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면 한국지엠 공장이 문 닫는 전북 군산과 경남 거제, 울산 같은 지역에도 제2의 광주형 일자리를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협상 막바지에 와서 노동계가 몽니를 부리면서 광주형 일자리의 운명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신설법인 상생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은 누적 생산목표 대수 35만대 달성 시까지로 한다’는 현대차와 광주시의 지난해 12월 잠정합의안 문구에 노동계가 반발해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노동계는 5년간 임금·단체협상을 유예하고 근로조건을 동결하겠다는 뜻으로 여겨 반대했다. 현대차는 이 조항이 없으면 근로자들이 매년 임금 인상을 요구해 결국 하나마나 한 사업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 같은 노사 불신에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 등이 가세하며 광주형 일자리의 성사 여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가 지방자치단체 간 새로운 저임금 일자리 경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최근 자동차 산업 노사정 포럼 발족식에서 “광주형 일자리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저임금 근로자 양산이 아닌 기업과 지역 경제가 공동 번영할 수 있는 혁신안”이라며 “노동계가 하루라도 빨리 오해를 지우고 혁신적인 일자리 창출 사업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이종혁·변재현기자 2juzso@@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노사 '불신의 벽' 20년...길 잃은 노사정 대타협
사회 사회일반 2019.01.29 17:33:18새해 시작부터 노사정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총은 끝내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불참하고 총력투쟁에 돌입할 태세다. 한국노총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빌미로 사회적 대화의 잠정중단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없이 사회적 대화를 밀고 나가기로 했다. 지난 1998년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 출범 후 20년이 지난 2019년에도 대한민국 노사정은 결국 투쟁일변도의 강경파가 주도하는 노동운동이 불러온 ‘불신의 벽’을 넘지 못했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다음달 1일 총파업·총력투쟁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목표는 최저임금 1만원 달성과 탄력근로제 확대 철회, ILO 핵심협약의 조건없는 비준 등이다. 이어 4·6·9·11·12월에도 총력투쟁·총파업이 예고된 상태다. 다만 민주노총 관계자는 “2월 말 이후 투쟁계획은 사업계획 수정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경사노위는 이미 출범했다. (민주노총 없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예정된 일정에 맞춰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정이 불신의 벽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중대 현안은 잇따라 표류하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 개편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은 노동계의 반발을 맞았다. 가격 경쟁력과 일자리를 모두 지키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현대차와 노동계가 협상의 마지막 난관을 넘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타협의 가장 근본적 장애물인 해묵은 불신을 씻기 위한 노사의 양보와 타협을 주문한다. 자동차·철강·조선 등 부진한 주력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갖추고 일자리도 창출하기 위한 거대한 구조혁신은 노사 협력의 기반 없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투쟁만으로 권리를 쟁취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노사가 서로 주고받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해소, 기업 경쟁력과 근로자 복지 확보를 함께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투쟁해 월급 올리는 시대 끝나...복지 지원 '사회적 임금' 시급"
사회 사회일반 2019.01.29 17:09:18문성현(사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는 내내 힘들어했다. 그는 지난달 폐에서 자란 1.6㎝짜리 악성 종양을 제거하고 보름가량 건강을 돌봤지만 산적한 현안은 문 위원장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신의 친정이기도 한 민주노총은 28일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끝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무산시켰다. 경사노위가 주도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 합의 시한은 이달 말이었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경사노위와 문 위원장에는 명백한 위기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탄력근로제와 ILO 핵심협약에 대해 꼭 합의가 아니더라도 노사가 머리를 맞대 성과를 내고 국민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사노위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근로자의 격차를 줄이는 양극화 해소와 사회 안전망 강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춰 미래 산업 경쟁에서 승리하고 내수경제를 창출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문 위원장은 1980년대 격렬했던 노동 투쟁을 이끌고 민주노총의 산파 역할을 했던 노동계 대부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이제 개별 기업에 들어가 노조 투쟁을 벌이고 임금을 높여 집 사고 의료비를 대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임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게 아니라) 보육과 교육·의료·주거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주는 ‘사회적 임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문 위원장은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한국 차는 중국 차뿐 아니라 독일 차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지금 같은 노사 관계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기본적으로 교육·보육·주거비를 국가에서 해결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선택한 독일 역시 적극적 복지 정책으로 기업의 임금 부담을 낮췄다”는 게 문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탄력근로제와 ILO 핵심협약 논의를 매듭짓고 국민들이 ‘경사노위가 잘한다’는 희망을 품는다면 이를 토대로 격차 해소와 사회적 임금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격차 해소의 방점은 대기업의 고임금 근로자와 중소기업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격차 줄이기다. 그는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인상 자제에 합의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중요하다”며 “고임금 근로자는 물가 수준 정도만 올리고 저임금 노동자를 많이 올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예를 들어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을 1%포인트 낮추는 대신 이 1%포인트만큼의 금액을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연대기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경사노위는 다음달 ‘양극화 해소 위원회’를 새로 출범시킨다. 문 위원장은 “‘양극화 해소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연구회’를 정식 위원회로 발돋움시키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문제는 단군 이래 최대 문제”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임금 노동자를 뛰어넘어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소득 문제까지 어떻게 풀어나갈지, 대단히 어렵지만 양극화 해소위에서 풀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위원장은 특히 친정인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투쟁일변도’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주노총은 사실상 경사노위 참여 대신 투쟁으로 방향을 튼 상태다. 그는 “투쟁이냐 대화냐는 철저히 민주노총 내부에서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를 거부한다고 자동차·철강 산업의 미래까지 논의하길 거부하는 것인가, 사회 안전망 논의까지 안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 철회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다른 논의도 못 하겠다는 자세는 민주노총이 넘어서야 한다”며 “민주노총보다 한국노총에 거는 기대도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최근 사용자 측이 ILO 핵심 협약 논의에서 근로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반발해 사회적 대화 중단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탄력근로제와 ILO 협상에서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그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대우 향상은 대화보다 (민주노총이) 투쟁으로 해결하려는 여지도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해서도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다. 그는 “지금 같은 노사 관계라면 미래 전기차 산업이 국내에서 꽃피기 어렵다”며 “광주형 일자리는 원·하청 공정임금, 사회적 임금 토대위에 미래형 자동차 사업을 어떻게 쌓아올릴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 대한(일자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치적 사업이라는) 오해들, 민주노총이나 현대차 노조가 갖고 있는 오해가 해소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日 노사협의 제도화 힘입어 20년새 파업 5분의1로 '뚝'
사회 사회일반 2019.01.29 17:07:29선진적 노사관계가 정착된 선진국들은 모두 경제위기 속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 대타협에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지난 1980년대 이후의 장기 불황인 잃어버린 20년, 스웨덴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 배경이었다. 한국도 최근 산업경쟁력 약화와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할 때 노사가 대립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29일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쟁의행위는 1990년대 이후 급감하고 있다. ‘반나절 이상의 파업’은 통계가 시작된 1936년 622건에서 꾸준히 올라 1974년 5,197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1981년 1,000건 밑으로 떨어진 후 2017년에는 38건으로 뚝 떨어졌다. 1970년대 중반 이후 1,200만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던 노동조합원 수도 2017년 998만명으로 감소했다. 일본 민간 주요 기업의 임금 인상률도 1974년 32.9%를 달성했지만 최근에는 1~2%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 같은 통계는 일본의 연례 임금 교섭 기간인 ‘춘투(春鬪)’가 1980년 이전과 이후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석탄·금속 등 8개 업종별 노조가 사측과 공동협상에 나선 1956년을 기점으로 잡는 춘투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해 현재는 전국적 노동단체인 렌고가 2월 임금 인상률을 제안하면 게이단렌이 답변을 내 그 해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3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결과를 참고해 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일반화돼 있다. 일본의 학계와 언론들은 버블 경제가 끝나고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1980년을 춘투가 변화한 시점으로 꼽았다. 1965년 11월부터 1970년 7월까지 경기 호황이 이어진 ‘이자나기 경기’ 등 경제 호황기에는 대규모 파업이 빈번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대규모 파업이 여론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경쟁적인 단체 교섭보다 노사가 정보를 공유하고 합의를 도모하는 노사협의제가 제도화됐다. 미나가와 히로유키 지바대 법·정치학과 교수는 “노사협의제하에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노사가 정면충돌을 피하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 상호 동의를 얻고 있다”며 “기업별 노조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된 것이 파업이라는 실력행사를 억제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게이단렌은 아예 올해 임금 협상에서 정부의 영향력까지 배제할 참이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게이단렌 회장이 지난해 5월 선임 결정된 후 “임금은 노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내수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2013년 이후 게이단렌에 임금 인상을 압박했으며 특히 지난해는 구체적인 인상률(3%)까지 제시해 ‘정부가 조장한 춘투’라는 뜻의 ‘관제춘투’ 논란을 샀다. 게이단렌은 올해 회원사 임금 가이드라인인 ‘경영노동정책 특별위원회 보고’에 정부 측의 임금 인상 요청을 반영하지 말라는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적 노사관계로 유명한 스웨덴도 세계 대공황이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의 배경이 됐다. 1930년대 스웨덴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간 6%씩 후퇴하고 실업률이 25%로 뛰었지만 1933년 건설노조가 장기 파업에 나서는 등 사회적 불안이 심화했다. 스웨덴 노총(LO)과 경영자총협회(SAF)는 3년간 협상한 후 △근로자들은 경영자들의 지배권을 보장 △경영자들은 일자리 창출과 기술에 투자 △기업이익금의 85%는 사회보장 재원으로 출연하는 안에 합의했다. 특히 당시 친노 성향의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이 대기업의 국유화 정책을 내려놓고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며 사회적 신뢰를 도모하기도 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과 스웨덴의 예를 볼 때 사회적 대화는 경영적 어려움을 겪지 않은 상황에서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위기는 노동시장 격차에서 오는 새로운 위기라는 점에서 대화를 통한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美 6건 중 1건 '원격진료'...한국은 19년째 답보
산업 IT 2019.01.27 17:50:24#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9에서 승차공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리프트 애플리케이션을 켜자마자 자율주행차를 배치해도 괜찮냐는 메시지가 나왔다. 좋다는 버튼을 누르니 CES 행사장 인근을 지나고 있는 리프트 승차공유 차량들의 위치가 지도에 나타났다. 미국 승차공유 업체 리프트가 자율주행 서비스까지 내놓으며 발전하고 있는 사이 국내 카카오(035720) 카풀은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지 39일 만인 지난 18일 운행을 멈췄다. 그리고 가까스로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출범해 대화를 시작했지만 모빌리티 혁신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앞서 이재웅 쏘카 대표는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직의 사의를 밝히면서 “당신의 제안은 혁신적이지만 나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현재의 실패한 절차들이 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카툰을 인용했다. 미래산업에 대한 국내의 현실이 한 장면에 담겨 있었다. 자율주행차와 같은 미래산업의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AI) 분야 역시 선진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황의종 KAIST 교수는 국가 간 AI 경쟁력에 관한 지표로 특허를 들며 “전체 7,319건의 AI 특허 가운데 한국은 약 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AI 기술 수준이 미국보다 2년, 일본과 비교해도 1년 이상 늦는다고 진단했다. 스마트 헬스케어의 핵심인 원격의료도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 중인 산업이다. 시장조사기관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진료 6건 중 1건이 원격으로 이뤄지고 2016년 도입한 중국도 이용자가 1억명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원격의료는 ‘의료법’에 막혀 19년째 답보상태다. 전문가들은 미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선 수용, 후 규제’의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로 규제 완화의 물꼬를 텄지만 적용되는 신기술의 범위가 한정적이고 2~3년의 단기간 동안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권경원·양사록기자 nahere@@sedaily.com -
韓 4차혁명 인재 5만7,700명 필요한데…3만1,800명 부족
산업 IT 2019.01.27 17:29:00‘3만1,833명.’ 오는 2022년까지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에서 부족한 국내 연구자 숫자다. 전 세계적으로 미래 산업을 위한 인재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내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내놓은 ‘유망 소프트웨어(SW) 분야의 미래일자리 전망’에 따르면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증강(AR)·가상(VR)현실 4대 분야에서 2022년까지 필요한 인력은 5만7,783명인데 반해 실제 배출되는 인력은 2만5,950명으로 약 45% 수준에 불과하다. 분야별로 AI의 경우 9,986명의 수급 격차가 발생하며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분야도 각각 335명과 2,785명의 격차가 나타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AR·VR 분야는 1만9,847명의 인재가 필요하지만 공급되는 인력은 1,120명에 불과해 1만8,727명에 달하는 미스매칭이 발생한다. 특히 초·중급 인재에 비해 석·박사급의 고급인력 부족 현상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급인력 수급 격차는 △AI 7,268명 △클라우드 1,578명 △빅데이터 3,237명 △AR·VR 7,097명이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고급인력의 미스매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 대학원 설립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 중 AI 인재는 이미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스타트업 사례를 통해본 2018년 중국 AI 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국내 AI 인력은 현재 2,664명이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2만8,536명과 1만8,232명의 AI 인재를 갖추고 있다. 중국의 AI 인력이 국내보다 약 7배가량 더 많은 것이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은 AI부터 기초과학 연구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 세계 연구자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끌어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인재확보는 다양한 스타트업의 탄생과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고 다시 인재가 모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실제로 전 세계 5,000여개 AI 기업 중 중국 기업은 1,040개로 21%에 달한다. 베이징에만 412개가 몰려 있으며 상하이에도 211개가 있다. 반면 국내 AI 기업은 26개로 중국의 2.5% 수준이다. 국내 AI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기업들은 고액 연봉과 직위를 보장하며 AI 인재 모시기에 나섰는데도 막상 인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 기업에서 AI 관련 업무를 담당할 연구인력을 모집했는데 AI를 배우고 싶다거나 비슷한 업무를 했다는 지원자들만 모이고 막상 AI 인력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도 AI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의 꿈 4차 산업혁명 특별시’ 행사에서 “AI 융합 클러스터를 조성해 데이터와 AI 전문인력 1만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박소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역량을 갖춘 AI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관련 학과와 양성기관을 신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배출된 인재가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중장기 인재 활용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자율주행차 GM 175대…'규제 덫' 한국은 다 합쳐 47대
산업 IT 2019.01.27 17:27:47#미국 샌프란시스코 사우스오브마켓에서 북쪽 피셔맨스 워프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우버 차량을 호출하자 1분여 만에 도요타 한 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피셔맨스 워프에서 내려 이번에는 자전거로 해안가를 달리기 위해 다시 우버 애플리케이션을 켜자 주변에 세워져 있는 전기자전거(점프바이크) 수십 대의 위치가 표시됐다. 우버 플랫폼 하나로 차량과 자전거를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미래 산업의 시작은 플랫폼 구축이다. 미국의 우버와 리프트, 동남아시아의 그랩 등이 승차공유서비스를 넘어 플랫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람과 차량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시작으로 음식배달·택배·금융·보험까지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카카오(035720) 카풀의 시범 서비스가 중단되는 등 아직 플랫폼 구축의 첫발을 내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다른 신산업 역시 규제로 인해 성장 정체를 겪고 있다. 업계에서는 헬스케어와 블록체인·인공지능(AI) 등 미래 국가 경쟁력을 책임질 산업들을 현재의 틀 안에 묶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뻗어가는 우버·그랩 VS 멈춰선 카카오=우버와 그랩 등의 업체들은 승차공유를 넘어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버는 전기자전거 업체 ‘점프바이크’를 인수한 데 이어 대중교통 모바일 티켓 제공업체 마사비와 렌트카 업체 겟어라운드 등과도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우버 관계자는 “대중교통·택시·자전거, 미래의 나는 자동차까지 우버 앱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형성하고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 최대 승차공유 업체 그랩 역시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연계) 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랩은 음식배달(그랩푸드)·그랩익스프레스(택배배달)·그랩파이낸셜(소액대출) 등으로 영역을 넓힌 데 이어 최근에는 디지털 보험사업까지 시작했다. 반면 카카오는 시범 서비스를 운영한 지 39일 만인 지난 18일 카풀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카카오가 시범운행 중단을 발표하자 택시 업계에서도 사회적 대타협기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지만 카풀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난항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현재 운행하고 있는 풀러스·타다 등 다른 업체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국내에서 승차공유의 확장이 벽에 막히다 보니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도 해외에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005380)는 최근 그랩과 손잡고 싱가포르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형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을 활용한 차량호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SK그룹은 그랩과 미국 차량공유 1위 업체 투로에 대규모 투자를 한 바 있다. ◇GM 자율주행차 175대인데…韓 전체 47대뿐=정보기술(IT) 업계에서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자율주행차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해외에 비해 국내의 준비 수준은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통국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가 보유한 자율주행차는 175대에 이른다. 뒤를 이어 △구글 웨이모 88대 △애플 70대 △테슬라 39대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국내 자율주행차는 현대차가 16대로 가장 많은 수를 갖고 있고 △서울대 4대 △삼성전자(005930) 3대 △KT(030200) 2대 등 총합 47대에 불과하다. GM 한 곳의 자율주행차가 한국 전체의 자율주행차보다 약 4배 더 많은 것이다. 모빌리티 업계의 관계자는 “정부에서 허가받은 차량 숫자 자체가 적다 보니 기술개발과 상용화까지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잡한 규제와 법 제도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도 나온다. 구글 웨이모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운전자의 제어가 필요 없이 차량이 스스로 움직이는 레벨 4단계의 자율주행 택시가 상용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국내는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손해배상보장법 등 다양한 법을 먼저 손봐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오는 2020년까지 운전자 범위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포함시키고 2026년 자율주행차 전용 면허를 신설하는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내놓았지만 실제 입법이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바이오·블록체인·AI도 첩첩산중=미국에서는 최근 애플워치4의 심전도 측정기능 덕분에 심방세동 증상을 확인해 치료를 받은 사례가 화제가 됐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승차공유 업체 고젝(Go-Jek)이 출시한 고메드(Go-Med)를 이용해 새벽에도 의사로부터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애플보다 먼저 심전도 측정기능을 개발하고 원격진료 기술을 갖추고 있는 한국에서는 규제로 인해 막상 상용화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른 신산업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블록체인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9’에서 5세대 이동통신(5G)·사물인터넷(IoT)·헬스 등과 함께 처음으로 주요토픽으로 선정됐다.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개발경쟁이 불붙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투기’라는 딱지에 신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공개(ICO)를 허용하고 블록체인 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AI 산업은 방대한 데이터가 기술 발전의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 기업은 음성 원본정보를 수집해 이용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사용자의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황창규 KT 회장은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식별 개인정보를 활용해 AI와 빅데이터 사업을 활성화하고 국가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⑥산업]서영우 풀러스 대표 "이용자 선택받은 1%만 혁신 만들어..딱 1년만이라도 맘껏 운영할 기회를"
산업 IT 2019.01.27 17:24:08“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은 스타트업의 99%가 망하고 이용자의 선택을 받은 1%만이 혁신을 만들어냅니다. 정부는 스타트업이 생존만을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서영우 풀러스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혁신으로 이어질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이용자의 선택”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모빌리티 기업인 우버는 해외에 진출할 때 서비스가 그 나라의 법에 저촉되는지 검토하지 않고 우선 서비스를 내놓는데 그건 편리함 때문에 수많은 이용자가 우버를 쓰게 되면 서비스를 절대 중단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6년 3월 설립돼 같은 해 6월 카풀(출퇴근 시간 승차공유) 서비스를 내놓은 풀러스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카풀을 시작한 지 1년 반만인 지난 2017년 11월 전일제 카풀을 내놨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에 직면한 서울시의 고발과 경찰수사로 사실상 서비스 중단의 고비를 맞았고, 수익성 악화로 직원 70%를 내보내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경험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국내 규제에 막혀 쓰러진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서영우 대표는 지난 8월 풀러스의 새 대표로 합류해 서비스 재활성화를 위한 이익 공유 모델 ‘풀러스 투게더’를 내놓는 등 혁신을 주도하며 ‘풀러스 2기’를 이끌고 있다. 서 대표는 혁신을 결정하는 주체는 서비스 이용자라고 생각한다. 서 대표는 이용자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기존 사업자까지 경쟁으로 끌어들여 이용자 만족 극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인 우버가 승차공유 시장의 질서를 바꾸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버는 국내에서는 규제에 막혀 출시 3개월 만에 서비스를 접어야 했지만, 해외시장에서 일단 서비스를 시작해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 방식으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우버가 진출한 나라에선 수십년간 업태의 변화가 없던 택시를 비롯한 기존업계도 생존을 위한 서비스 제고에 나서고 있다. 서 대표는 국내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카카오톡을 들었다. 그는 “2010년 출시 석 달 만에 수백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카카오톡에 두려움을 느낀 일부 통신사가 카카오톡 접속을 막자 기존 통신사 고객들이 크게 반발했고 결국 통신사는 카카오톡 접속을 다시 허용해야 했다”며 “카카오톡의 보편화는 기존 통신사 문자 서비스를 무료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또 스타트업이 새로운 사업을 할 때 법적 검토에 더해 이해 관련자를 위한 설득 과정이 지나치게 길고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의 고발과 경찰 조사에 대한 두려움 없이 더도 말고 딱 1년만 서비스를 마음껏 운영해볼 수만 있으면 망해도 여한이 없다는 스타트업이 수도 없이 많다”며 “정부는 서비스가 시장에서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을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새로운 서비스도 일단 한번 시도해보자’는 스타트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규제샌드박스를 추진하기로 하고 대상 기업의 신청을 받고 있다. 서 대표는 “일단 시행해 고객의 선택을 받자는 측면에서 현 정부의 규제샌드박스는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카풀은 현재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정부와 여당, 택시 업계, 가장 큰 카풀업체인 카카오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논의의 첫발을 뗐다. 서 대표는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전향적인 결정이 나와 하루라도 빨리 사업자들이 서비스로 경쟁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면서도 자칫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결정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대타협 자체가 목적이 돼 혁신을 막는 결과가 나오고 이 결과를 따라야만 하게 된다면 처음 계획했던 서비스의 형태가 왜곡되고 스타트업이 집중해야 할 ‘이용자 만족’이라는 가치 역시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25일 카풀 관련 논의에서 자가용을 빼고 택시 중심으로 타협안을 도출하기로 결정하며 벌써부터 이용자와 스타트업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서 대표는 신산업과 관련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창업 생태계의 질적 제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청년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 얼마든지 창업에 뛰어들 것”이라며 “이들이 창업한 기업을 키워 기업공개나 매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유능한 인재들이 신산업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
[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⑥산업] 규제유예 최소 4년 필요..'테스트베드' 늘려 상용화 길 터야
산업 IT 2019.01.27 17:19:16지난 2007년 무인기(드론) 산업에 대전환이 일어났다. ‘DIY드론즈’라는 온라인커뮤니티를 설립한 미국인 크리스 앤더슨이 개인이 불과 300달러의 비용으로 조립할 수 있는 취미용 드론을 내놓았다. 그 성능이 4,000만달러대의 군용드론인 ‘프레데터’에 못지않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순식간에 취미용 드론 수요가 급증했다. 2년 뒤 앤더슨은 ‘3D로보틱스(3DR)’라는 회사를 만들어 초기 민간용 드론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3DR은 2016년부터 드론사업에서 손을 뗐다. 중국 기업 DJI가 20~30% 이상 저렴한 드론들을 쏟아내며 세계 시장의 약 70%를 장악한 것이다. 후발주자인 중국 드론업체들이 선발 미국 기업을 꺾을 수 있던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해소 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철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은 드론·원격의료와 같은 신개념 기술이 등장하면 일단 규제 없이 기술을 수용한 뒤 이후 부작용이 발생하면 점진적으로 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선(先)허용-후(後)보완’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각 정부부처가 처음부터 온갖 규제들을 적용한 뒤 이후 점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선금지-후완화)으로 접근하다 보니 기업들이 상용화에 나서지 못해 기술발전을 이루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2003년 선전지역에서 드론 비행 관련 규제를 완화했고 2009년 ‘민용무인기항공교통관리방법’ 규정을 통해 규제완화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2012년 ‘첨단장비제조 12.5규획’을 통해 드론을 중점 육성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년 뒤 저고도 항공영역에서의 드론 비행을 공식적으로 개방했다. 2015년에는 드론 관련 주파수 배분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줬다. 이듬해에는 정부의 5년 단위 경제계획인 ‘13.5규획’을 통해 드론을 비롯한 10대 산업을 중점적으로 키우겠다는 ‘중국제조2025’ 정책을 선언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드론 초창기부터 정부가 온갖 규제를 적용했다. 국내 업체들이 드론을 개발해 상품화하기 위해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전기인증’을 신청하니 지경부 측은 “우리 부처의 산업분류상 드론에 적용할 ‘산업코드’가 마땅치 않다”고 시간을 끌었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의 전언이다.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는 드론에 대한 전파인증을 받아야 했는데 이 역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군당국까지 끼어들어 비행 가능 공역에 대한 규제를 하고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은 드론시장을 선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서야 우리 정부는 중국처럼 신기술에 대해 ‘선수용-후규제’ 방식의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최근 도입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적용 받는 ‘신기술’의 범위가 특정 분야로 한정돼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분야나 산업융합신제품, 핀테크·혁신금융, 지역혁신 성장사업 등의 분야로 한정돼 있다. 규제샌드박스 적용 기간도 너무 짧다. 김태근 벤처기업협회 실장은 “규제샌드박스 적용시 2~3년간 규제 적용을 유예받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이 생산라인을 깔고 판매망을 확보해 신제품을 출시하기까지는 보통 1~2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규제유예 기간을 최소한 4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술이 조기에 시장에서 상용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대규모 기술실증·시범사업으로 ‘판’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광저우가 자율주행 택시시범운행 사업을 통해 자율주행자동차 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개별기업 차원에선 추진이 어려운 대규모 스마트시티 사업의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테스트베드 사업 추진이 필수적이다. 스마트시티 분야에 적극 진출을 모색 중인 국내 대형 정보기술(IT) 업체 임원은 “스마트시티사업의 경우 국내에서 대규모 사업실적을 쌓아야 해외에 진출할 때 발주처의 ‘적격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데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시티는 대부분 중소 규모”라고 전했다. 그 중에서 규모가 큰 스마트시티 구축 시범사업도 세종시 5-1구역 83만평, 부산에코델타 부지 내 66만평 규모여서 개별 사업 기준으로 100만평 이상의 스마트시티 건설실적을 쌓을 수 없는 상태다. 대규모 스마트 신도시 추진이 어렵다면 기존의 도시재생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임원도 “정부가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지역은 2017년에 68곳, 2018년에 99곳인데 그중 스마트시티 개념이 접목된 곳은 각각 5곳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단순 토목건설 개념의 사업이었다”며 “이를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으로 전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기술에 대한 국제적 제도정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창작한 콘텐츠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공한 콘텐츠, 서비스 등에 대해 누가 지적재산권을 가지는지를 놓고 한중일, 미국, 유럽연합(EU) 내에서 서로 상이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이와 관련한 국제적 합의를 선도적이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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