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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의 곡소리…폭염은 저승사자였다

정부, 올 폭염사망 48명이라지만

주거취약계층 변사는 통계 안잡혀

7월 변사자 월평균보다 581건 많아

행안부 "질본과 협의해 대책 마련"

폭염이 이어진 15일 오전 서울 후암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야외 그늘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땀에 흠뻑 젖은 50대 남성 A씨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숨을 거뒀다. 5㎡(1.5평) 크기 방 안의 온도는 33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A씨 옆에는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갈 뿐이었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평소 술을 즐겼지만 지병을 앓은 적은 없었다. “더위가 사람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A씨는 온열질환자가 아닌 단순 변사자로 분류돼 유가족에게 넘겨졌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살던 50대 남성 B씨도 낮 기온이 36.9도까지 올랐던 지난달 30일 쪽방 화장실에서 숨졌다. 구급대원이 찾았을 때는 변기에 앉은 자세 그대로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은 B씨 역시 개인적 질병 탓에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그를 병사자로 분류했다.

올 여름 111년 만의 폭염은 주거취약계층의 심장을 타격했다. 밀려드는 더위를 막아낼 수 없었던 쪽방·판잣집·여관 거주자들 여럿이 목숨을 놓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지역거점병원에서 온열질환자 판정을 받고 사망한 48명만 ‘폭염 사망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단순 변사자’로 처리된 사망자 가운데 찌는 더위가 사인(死因)이었던 이들도 상당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폭염 사망자가 알려진 수치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용산주민센터에 따르면 A씨처럼 동자동에서 발생한 변사자 수는 올여름에만 7명에 이른다. 대부분 보급품으로 나오는 생수를 마시며 선풍기 한 대로 30도를 훌쩍 웃도는 열대야를 견디다 세상과 이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자동 쪽방상담소가 장애인과 고령자 50명에게 냉풍기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900여명이 거주하는 쪽방촌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지원이었다. “너무 더우니까 밤마다 다들 빌딩으로, 공원으로 뛰쳐나옵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너무 많으신 분들만 방 안에 남아있다가 조용히 하늘나라 가는 거요.” 쪽방촌 주민 남모(64)씨가 귀띔했다. 밤마다 땀을 비 오듯 흘린 남씨는 지난달 자비로 에어컨을 사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은 “전기세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폭염 위협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들도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판자촌 ‘백사마을’에 사는 김희순(80) 할머니는 서울 시내 온도가 33도까지 올랐던 지난달 26일 어지럼증으로 문지방을 헛디뎌 허리를 크게 다쳤다. 보름을 꼼짝 없이 누워있는 동안 배와 등이 땀띠로 뒤덮였다. 땀을 심하게 흘린 김 할머니는 “귀신이 나를 데려가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같은 마을 곽오단(86)씨도 잠을 이루지 못해 사경을 헤맸다가 적십자 활동가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렸다.

폭염은 단순 기상현상을 넘어 사회적 재난으로 다가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월 112에 신고됐다가 변사자로 최종 종결된 건수는 2,770건으로 월평균인 2,189건보다 581건이나 더 많았다. 병자와 자살자를 포함하더라도 26%가량 급증한 수치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현행 시스템에서 이미 사망한 사람은 더위 영향을 파악할 수 없어 온열질환 사망자에서 제외된다”며 “질병관리본부와 협의해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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